백금(Pt)은 전통적으로 고급 시계, 반지, 귀금속으로 더 익숙한 금속이었지만, 이제 그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2024년 현재, 백금은 단순한 사치재를 넘어 ‘수소경제’라는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 결정적인 위치에 서 있다. 특히 연료전지와 수소전기차, 산업용 수소 생산 촉매 분야에서 백금은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산업 전반에서 그 수요와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백금이 왜 지금 수소경제의 중심소재로 떠오르는지, 기술적 이유부터 산업 트렌드, 그리고 필자의 생각까지 함께 풀어보고자 한다.
연료전지의 심장, 백금 촉매의 위상
수소경제라는 말은 멋지게 들리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선 이 개념을 ‘작동’시키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연료전지는 그 중심에 있다. 수소를 직접 전기로 바꾸는 장치인 연료전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이상적인 친환경 발전 방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연료전지의 핵심이 바로 백금 촉매다. 수소와 산소의 반응을 극대화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전극 반응에서, 백금은 다른 어떤 금속보다도 뛰어난 활성을 보여준다. 나는 몇 년 전 실제 연료전지 분해 조립 실습을 해본 적이 있다. 대학원 때 전기화학 수업의 일환이었는데, 막대처럼 생긴 단단한 부품 속 얇은 백금막이 반응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당시에는 “왜 이렇게 비싼 금속을 써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실험을 거듭할수록 다른 금속은 수명이 짧거나 효율이 떨어진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백금을 단지 값비싼 금속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금속’으로 인식하게 됐다. 특히 PEM 연료전지(고분자 전해질막 연료전지)에서는 백금이 거의 필수다. 고온과 고습한 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금속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백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백금 나노입자나 합금 촉매 기술이 발전하면서, 같은 성능을 더 적은 백금으로 낼 수 있는 방향도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체할 수 없는 소재’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백금이 연료전지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선택지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반응속도가 빠르다. 둘째, 내구성이 높다. 셋째, 부식에 강하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요구되는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금속은 현재 백금 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만큼 백금은 연료전지 기술의 상용화를 현실로 만든, 조용하지만 강력한 조력자다.
수소전기차, 백금 없이는 출발도 어렵다
2024년 현재, 수소차 시장은 상용화 초입을 지나 본격적인 확산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넥쏘, 도요타의 미라이, 혼다 클라리티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수소전기차(FCEV)를 선보이는 상황에서, 그 핵심 부품 중 하나가 백금 기반 연료전지 스택이다. 수소차에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장치는 일반 전기차의 배터리와는 전혀 다른 구조인데, 여기에도 백금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수소차를 직접 시승해 본 적이 있다. 엔진 소음 없이 매끄럽게 나가는 느낌, 그리고 수소를 ‘태워서’ 달린다는 개념 자체가 신선했다. 그런데 더 흥미로웠던 건, 이 차량이 출발하고 나서 멈출 때까지 끊임없이 백금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연료전지 시스템은 가동하는 동안 내내 수소와 산소를 전기화학적으로 반응시키며, 그 과정에서 백금은 매순간 반응을 돕고 있다. 이걸 알고 나니, 그 조용한 승차감 이면에 숨은 백금의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더불어 최근에는 트럭, 버스, 기차 등 대형 상용차에도 연료전지 시스템이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백금 수요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연료전지 전문업체인 ITM Power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수소차 1대당 평균 30~50g의 백금이 소모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기존 내연기관 차량보다 고급 금속 소비량이 훨씬 높은 셈이다. 문제는 백금이 희귀 금속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공급은 남아공과 러시아에 편중되어 있으며, 정제와 재활용 또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금이 선택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으로서는 이만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 점이 백금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쉽게 구할 수 없고,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금속이기에, 그것이 주는 신뢰성과 희소성은 기술을 넘어 전략적 가치로 확장된다.
백금 수요의 확장과 산업 구조의 변화
백금은 이제 단순히 자동차나 연료전지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자소재, 의료장비, 항공우주, 심지어는 환경 정화 기술까지도 그 쓰임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산업용 촉매로서 백금은 암모니아 분해, 일산화탄소 제거, 고온 산화 반응 등 여러 공정에서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해오고 있다. 최근 나는 백금 촉매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전환 기술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백금을 나노 구조로 만들고, 전기화학 셀에 적용하여 CO₂를 고부가 화합물로 전환하는 기술인데, 그 효율성과 선택성이 매우 뛰어났다. 단순한 배출 저감이 아니라, 오염원을 자원으로 바꾸는 전환 기술에서조차 백금은 기술 진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기준으로 백금 시장의 가장 큰 수요처는 여전히 자동차 촉매제지만, 앞으로는 수소에너지 관련 기술과 전자소재 산업에서의 비중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제조 공정 중에서 고온이 필요한 장비 부품에 백금이 적용되며, 고내열성 및 내식성이 요구되는 극한 환경에서 백금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백금을 하나의 ‘산업 인프라 금속’으로 본다. 그 자체로 제품에 드러나진 않지만, 백금이 빠지면 작동하지 않는 기술이 너무 많다. 이 말은 곧 백금이 기술을 이끄는 '숨은 리더'라는 뜻이다. 공급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분명한 리스크지만, 동시에 이 금속의 전략적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에너지 전환,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백금은 분명 중심에 있게 될 것이다.
미래 에너지를 이끄는 금속, 백금
백금은 더 이상 귀금속 시장에서의 존재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연료전지, 수소전기차, 산업 촉매 등 가장 앞선 기술들이 백금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필자로서도 백금을 단지 '비싼 금속'이 아니라, 미래를 움직이는 금속으로 보는 시선이 생겼다. 기술이 진화할수록, 백금의 가치는 더욱 깊이 있는 방향으로 확장될 것이다.
